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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교 본부관 앞 전면 리뉴얼 문제,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 건립의 의의를 되짚어본다. 등록일 2019.01.02
첨부파일  1982년 5월 1일 동아일보 1면에 게재된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 건립 광고.png,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 건립기금 헌납증서.jpg

모교 본부관 앞 전면 리뉴얼 문제,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 건립의 의의를 되짚어본다.

 

지난 6월 초, 대학 본부는 본부관 앞 공간 전면 리뉴얼 계획을 발표했다. 본부의 계획에 따르면 본부관 앞에 이태리 디자이너가 제작한 약 10m 높이의 대형 조형물을 설치하고, 원래 위치해있던 분수대 광장 및 해공 동상을 이전 재배치하는 내용을 골짜로 하고 있다.

 

이번 계획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은 동문들이 힘을모아 전 구성원들의 동의를 얻어 건립된 해공 선생의 동상이 동문들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전된다는 점이었다. 리뉴얼 계획이 발표된 직후 열린 38-1회기 제5차 상임위원회에선 해공 동상 이전 문제에 대한 논의가 안건으로 채택되었으며, 상임위원회는 만장일치로 학교본부가 추진하는 해공 선생 동상의 이전에 전혀 동의할 의사가 없음을 결의하고 625일 학교 본부에 결의를 담은 공문을 발송했다. 재학생들도 학생 커뮤니티에도 역사성 있는 해공 동상을 왜 옮기려 드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 다수 게시되었으며, 모교 조형대학의 한 교수도 자신의 SNS를 통해 해공 선생 동상은 상징적 의미는 물론이고 시각적 측면에서도 본관 앞 공간 전체에 품위를 더하는 훌륭한 요소라고 평하며 해공 동상의 위치는 상징성과 시각성 모두에서 이보다 더 좋은 곳은 없습니다.”라고 단언하기도 했다.

 

이번 149호 총동문회보에서는 이번 문제와 관련해서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이 어떻게 현재의 자리에 세워졌는지 다시 한 번 되짚어보려고 한다.

 

전 동문의 염원이 담긴 해공 선생 동상

 

해공 신익희 선생은 학교의 설립자로서 우리 동문이나 모교 전 구성원들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지만, 설립 초기에 입학했던 동문들에게 해공 선생의 존재는 더욱 더 각별했다. 해공 선생은 해방 이후 국가의 발전과 민주주의의 신장에 기여할 인재들을 모으기 위해 모교를 건립했고, 해공 선생의 뜻에 동참하고자 모교에 입학한 동문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해공 선생이 서거한 뒤, 선생의 뜻을 널리 기리고자 했던 초창기 졸업 동문들을 중심으로 1960년부터 해공 선생 동상 건립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당시엔 총동문회가 아직 자리를 제대로 잡고 있지 못한 상태였고, 전체 동문 수도 충분치 않았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진행되진 못했다.

 

그러던 중 1981년에 유기정(경제 49학번)동문이 제20대 총동문회장으로 취임하면서 분위기가 바뀌기 시작했다. 19811130일에 개최된 20회기 제1회 정기 이사회에서 동문회 활성화 사업 추진 차원에서 해공 동상 건립을 역점사업으로 재추진하기로 의결하면서 동상 건립 사업은 힘을 받기 시작했다. 20회기 총동문회는 동문회보를 복간하고 1만명 동문 찾기 운동을 추진하여 동문들의 네트워크를 복원했고, 198251일에는 동아일보 1면 하단에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 건립에 즈음하여란 제목의 광고가 게재하여 동상 건립 운동이 본격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했음을 대외적으로 알렸다. 이에 동문들도 크게 고무되어 광고 게재 후 4일 뒤에 열린 해공 선생의 26주기 추도식에는 1천여명의 동문들이 모여 해공 신익희 선생 동상 건립위원회를 조직했으며 명예위원장에는 남덕우 국무총리(정치 46학번), 추진위원장엔 유기정 총동문회장, 집행위원장에는 박영재(경제 47학번)동문을 추대해 동상 건립을 준비할 진용을 갖췄다. 거기에 행사 당일에만 당시로선 거금이었던 25백만원이 건립기금으로 모금되면서 동상 건립은 더욱 더 탄력을 받기 시작했다.

 

총동문회는 동상 건립에 대한 총 예산을 7천만원을 계획하여 1년동안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으며, 모금 결과 총 예산을 뛰어넘는 843만원이 모였다. 모금에 참여하는 동문 및 재학생들의 참여는 뜨거웠는데, 전국 각지의 동문 뿐만이 아니라 해외에 거주하는 동문들도 모금에 적극 동참하였으며 중동 오지에 파견 나가있던 동문도 성금을 보내와 동문들을 감동시켰다. 재학생들도 학도호국단을 중심으로 모금운동에 동참하였으며, 여의치 않은 일부 재학생은 버스 토큰으로나마 모금에 참여하는 열의를 보여주기도 했다. 동문과 재학생 외에도 재단, 학교본부, 교수, 교직원들도 모금에 동참하는 등 동상 건립 모금 운동은 전 국민인의 참여속에 활기를 띄었다. 총동문회도 모금 통로를 다각화하기 위해 83222일부터 28일까지 1주일간 명인 초청 동문 서화전을 열어 판매 수익금을 모금에 보태기도 했다.

 

모금운동이 순조롭게 진행되자 건립위원회는 본격적으로 동상 건립 절차에 착수했다. 위원회는 동상 건립 위치는 재단, 학교본부등 모교 전 구성원과 협의 끝에 본부관 앞으로 정하였으며 제막일은 해공 선생의 탄신일에 맞춘 83718일로 정했다. 동상은 청동 재질에 높이는 2.5m의 입상으로 대좌 높이는 2m이며 엄태정 작가가 제작하였다.

 

제막식은 미망인 김혜화 여사를 비롯해 유진오, 이희승, 윤치영 등 원로인사, 채문식 당시 국회의장, 유치송 당시 민한당 총재, 이종찬 당시 민정당 총무 등 사회 각계 각층의 인사와 모교 관계자, 동문, 재학생 등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거행되었으며 이후 35년간 변함없이 본부관 앞에 위치하며 모교와 함께하고 있다. 이외에도 성곡도서관 앞에 위치한 성곡 선생 동상, 용두리 상 앞에 위치한 교훈비, 본부관 앞에 위치한 성곡선생 어록비 또한 동문들의 정성을 모아 모교 교정에 설치한 것으로서, 자라나는 후배들에게 모교의 정신을 되새기면서 널리 기억하게 하는 역할을 충실히 하고 있다.

 

총동문회는 해공 선생 동상 건립 정신을 잊지 않을 것

 

다행스럽게도 최근 학교 본부는 총동문회 및 모교 구성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위에 언급된 건립 취지를 존중하여 해공 선생 동상을 현 위치에 계속해서 존속시키겠다는 뜻을 밝혀왔다. 다른 동상도 아닌 모교의 상징이며 동문 및 모교 전 구성원들의 모금으로 건립된 해공 선생의 동상과 관련된 문제를 가벼이 처리하려 한 것은 아쉬움이 남지만, 즉각적인 의견 수렴을 통해 올바른 길로 나아가려 하는 점은 다행이라 하겠다.

 

앞에서 언급했다시피 본부관 앞에 위치한 해공 선생 동상은 특정 집단이나 개인이 아닌, 동문 및 재학생 그리고 재단, 학교 본부 등 모교의 전 구성원이 힘을 합쳐 세운 것이다. 총동문회는 앞으로도 해공 선생 동상을 건립하고자 했던 동문 및 구성원들의 정신을 계속해서 잊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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