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문 회사소개

제목 [북악초대석] - 한민규(체육 78) 한국체대 대학원장 등록일 20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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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악초대석>

패럴림픽의 선구자, 한민규(체육 78) 동문을 만나다.

 

Q. 안녕하십니까? 간단한 자기소개와 특수체육 분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 저는 1984년 서울 패럴림픽 조직위원회에 공채 1기로 입사한 이후, 패럴림픽 준비 실무를 담당했습니다. 이후 대한장애인체육회 신설 조직팀에 들어가 대한체육회에 버금가는 장애인 체육 단체를 세우는 기초 역할을 했습니다. 이후에는 한국체육대학교 특수체육교육과 교수로 부임하여, 후학을 양성하고 장애 체육인에 대한 과학 지원에 힘쓰고 있습니다.

특수체육에 대해 설명드리자면, 본래 영어로는 Adapted physical education라고 해서 직역하면 적응 체육이라고 합니다. 이 뜻을 알면 이해하기가 쉬운데요. 일반 체육을 장애인들이 할 수 있도록 적합하게 변형을 시켜, 장애인들도 일반인과 같이 운동을 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테니스를 들자면, 휠체어를 타고 테니스를 하는 선수는 활동 반경이 제한되어 일반 스포츠 규칙으로 하는 데 어려운 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바운드를 한 번 더 허용한다든지, 스키의 경우에도 몸이 불편한 선수도 신체 상황에 맞게 보조장비나 운동법을 개발하는 경우가 그러하겠습니다. 현재 특수체육 분야도 많은 연구가 이뤄져서 비장애인들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다. 보통 패럴림픽 경기 수준이 낮을 것이라는 편견이 있는데, 스포츠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기량 차이가 많이 줄어 들었습니다.

 

Q. 당시 함께 입학하신 분들은 보통 체육 교사로 많이 진로를 정하셨는데, 특수체육 분야로 들어서긴 이유는 무엇인가요?

 

제가 대학 졸업반이던 80년대 초반에는 서울 올림픽 유치가 큰 사회적 현상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그쪽으로 준비하던 중에, 패럴림픽 유치가 확정되었다는 뉴스를 접했습니다. 가만히 생각을 해보니, 올림픽에 기여하는 것도 좋지만 패럴림픽 조직위원회의 일원으로 참여하여 성공적으로 대회를 치러낸다면, 국내의 열악하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 장애인 체육환경 개선을 이뤄낼 수 있을 것이라 느꼈습니다. 그렇다면 체육을 전공한 학도로서 좀 더 의미있는 생을 살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이르게 되어 패럴림픽 조직위원회 공채에 지원을 하게 되었죠. 그것이 첫 시작이었습니다.

 

Q. 말씀하신 것을 들어보니 서울 패럴림픽 준비하실 때, 어려운 점이 많으셨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준비과정은 어떠했나요?

 

처음에 패럴림픽 조직위원회에 입사해서 경기부에 직원으로 들어갔는데요. 부장님 한 분 계시고, 직원은 나 혼자라 일을 엄청나게 많이 했던 기억이 납니다.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범정부적으로 기업이나 정부에서 파견인력이 많아 양적이나 질적으로 지원이 풍족했는데, 패럴림픽은 그렇지 못했거든요. 그나마 처음에는 올림픽 관련 시설을 공유하는 것도 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왜 서울에서 패럴림픽을 치르려고 하느냐 어디 외곽지역에서 적당히 하면 되는 것 아니냐는 이야기도 많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당시 서울 올림픽 조직위원회와의 협력으로 올림픽 시설 공유, 올림픽 관련 예산을 패럴림픽에 동시 지원 등이 이뤄질 수 있었고 이는 성공적인 대회 개최의 큰 발판이 되었습니다.

사실 올림픽 수준으로 패럴림픽을 치루는 것은 패럴림픽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기 때문에 준비하는 데 많은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외국에서 먼저 개최된 패럴림픽 분석부터 시작해서, 예행연습 삼아 국내에서 장애인 체육대회를 개최하기도 했습니다. 낮에는 다른 기관들과 대회 준비를 위한 협조 회의의 연속이었고, 저녁에는 대회 마스터 플랜 작성하느라 여관에 들어가 새벽까지 일하고 다시 출근하는 일의 연속이었죠. 사실 이 준비과정이 나중의 진로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장애인 체육에 대한 외국 분야의 자료를 국내와 비교 분석하면서, 한국이 얼마나 장애인 체육의 불모지인지를 여실히 체감할 수 있었고 이는 대학원에서 석사, 박사과정을 밟게 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Q. 서울 패럴림픽은 패럴림픽 사()에 있어서도 역사적인 대회로 손꼽히고 있는데요. 어떤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으시나요?

 

사실 대회 자체로만 벅찼다기 보다는, 인식이 바뀌어 나가는 과정이 인상 깊었습니다. 비장애인 분야는 1920년에 조선체육회부터 시작된 대한체육회와 같이 제대로 된 기관이 있었는데 장애인은 그렇지 못했어요. 대회를 개최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다음에는 누가 장애인 체육업무를 맡아서 진행할지도 생각해 볼 문제였습니다. 특히 예행연습 차원에서 이뤄지던 전국 장애인 체전을 조직위원회가 해산하면 누가 진행할지도 불분명했죠. 그래서 대회 전부터 사후 조직에 대한 준비를 했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대회가 굉장히 성공적으로 치러지고 정부의 인식도 바뀌면서 큰 도움이 되었죠. 패럴림픽 조직위원회가 해산한 바로 다음 날, 대한 장애인 체육회가 출범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서울 패럴림픽에서 발휘한 높은 경기력으로 인하여 당시 올림픽 대표에게만 주어지던 포상과 연금 등의 지원이 장애인 패럴림픽 입상자들에게도 주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한 지원을 바탕으로 장애인 체육의 규모가 커지면서 장애인 체육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는 조직들이 자리 잡은 것은 패럴림픽 대회의 최고의 성과이자 준비한 이 중 한 명으로서 보람찬 일이지요.

여기에 국제적인 평가도 대단했습니다. 국제 패럴림픽 위원회에서 패럴림픽 역사를 다룬 책을 만들었는데, 거기에서 평가하길 서울 패럴림픽이 최초의 현대 패럴림픽이다. 올림픽 다운 패럴림픽은 처음이다라고 했고, 이후 국제 사회를 나가봐도 한국의 장애인 체육에 관련된 인식이 많이 높아진 것을 체감하면서 내심 뿌듯하기도 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이 발전 과정의 공로로 체육 훈 포장, 대통령 표창도 받았지만 대한민국 체육상이라 해서 체육 분야에 가장 최고 권위의 상이 있는데 패럴림픽과 장애인 체육 관련 공로로 이 상을 받았을 때가 가장 영광스러웠습니다.

 

Q. 꼭 이루고 싶은 목표 하나와 동문 여러분에 대한 메시지 부탁드립니다.

 

제가 80년대 초반부터 장애인 체육 분야에 뛰어들어 이제 40년이 되어가는데, 쭉 살펴보니까 이 장애인 체육의 역사에 대한 책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언제 어디서부터 이 분야가 시작되었고, 지금까지 어떻게 발전되어 왔으며, 앞으로의 과제는 무엇인지 상세히 적힌 책을 쓰면 후학들이나 선수 및 지도자, 체육계 관계자 분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기 서촌에서 태어나 자랐기에, 국민대가 창성동에 있던 시절부터 지켜봐 왔습니다. 지금은 캠퍼스가 정릉에 있지만, 동문회관은 여전히 서촌에 있어 국민대는 여전히 제 마음속의 고향같은 느낌입니다. 저도 지금 총동문회 상임위원과 감사로 활동하고 있지만, 정말 오래된 역사에서 오는 자긍심과 자부심, 그리고 지금의 저를 키워준 학교와 동문 여러분에게 감사함을 느끼고 있습니다. 더 많은 분들과 함께 할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져서 모교와 동문 사회 발전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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